파조역사15.참의공파(叅議公派)참의공파 자료
참의공파 자료

<파조소개>

공(公)의 휘(諱)는 효종(孝終)으로 1434년(세종16년) 9월 5일에 남원(南原)의 본제(本第)에서 태어나니 자(字)는 가구(可貞)으로 증병조참의(贈兵曹參議) 휘(諱) 렴(廉)의 손자이고 단종절신(端宗節臣)인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휘(諱) 지년(知年)의 셋째 아들이다.

1456년(세조2년.병자년) 생원시(生員試)에 올랐고 1458년(세조4년.무인년)​에 알성시(謁聖試)에 올라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로 출사하여 1461년(세조7년.신사년) 겨울에 매우(梅佑)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가서 인물쇄환(人物刷還)을 주청하였고 1462년(세조8년.임오년) 정월의 거듭된 부모상에 임종(臨終)하지 못하고 국사(國事)로 인해 외국에서 그해 2월에 귀국하여 거상(居喪)하고 1464년(세조10년.갑신년)에 부모상의 복(服)을 벗고 여름에 동부주부(東部主簿)가 되었다.

1466년(세조12년.병술년) 여름에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를 겸하였고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과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을 거치는 동안 서장관(書狀官) 3회와 종사관(從事官) 4회 문폐사(問弊使) 2회 점마관(點馬官) 3회 경차관(敬差官) 2회 여제관(厲祭官) 1회 등 화사한 봉사(奉使) 경력이 있으니 그 능력이 뛰어남을 알수있고 1478년(성종9년.무술년) 겨울에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로 승진하였는데 1479년(성종10년.기해년) 겨울에 명(明)나라에서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기 위하여 사신(使臣)이 와서 우리나라에 구원병(救援兵)을 청하니 조정의 의논이 큰나라를 택하여 출병하기로 결정되었으나 공(公)의 간곡한 상소(上疏)로 인하여 파병(罷兵)한 사실로 조야(朝野)를 놀라게 한 바가 있다.

1481년(성종12년) 봄에 전당하관(全堂下官​)의 이문회시(吏文會試)에서 장원(壯元)하여 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 승진하여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와 한학교수(漢學敎授)를 겸하였고 그해 여름에 맏형인 대사성(大司成) 효항(孝恒)과 더불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찬집(撰輯)하였으며 1485년(성종16년.을사년) 가을에 삼국정치를 논하는 전당상관(全堂上官)의 문신회시(文臣會試)에 장원한 뒤 예조참의(禮曹參議)가 되었고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1년.을묘년)에 연산(燕山)이 임금자리에 오르니 이해 10월에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인동장씨(仁同長氏)로 휘(諱) 지(智)의 딸이고 공(公)은 1497년(연산3년.정사년) 2월 8일에 64세로 돌아가시니 묘소는 전북 남원시 광치동(廣峙洞) 송현(松峴)의 자좌(子坐)에 부인과 합장(合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