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조역사※문헌공파(文獻公派)문헌공파 자료
문헌공파 자료

<파조소개>

 공(公)의 휘(諱)는 현영(玄英) 이고 생몰(生沒)과 묘소(墓所)등은 미상(未詳)이며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휘(諱) 보기(寶奇)의 손자이고 좌복야(左僕射) 휘(諱) 위(偉)의 아들로 문과(文科)에 올라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歷任)하였다.

 공(公)의 시호(諡號)는 문헌(文獻)이고 월성군(月城君)에 추봉(追封)되었다.

 2남을 두니 장남은 영록대부(榮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월성군(月城君) 휘(諱) 종철(宗哲)이고 차남은 광록대부(光祿大夫) 보문각태학사(寶文閣太學士) 안숙공(安肅公) 휘(諱) 종보(宗輔)이다.

 공(公)의 묘소(墓所)는 아들 두분과 함께 개성(開城)의 정산(鄭山)에 모셔있다는 것이 확실하여 왜정때 후손(後孫)들이 참배(參拜)한 증언이 있으나 봄이슬과 가을서리가 내릴때마다 자손들이 추모(追募)의 뜻을 붙일 곳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왔다.

 지난 1985년 5월에 후손 기승(基承), 봉균(捧均)이 일가들의 힘을 모아 서쪽에 문헌공(文獻公), 중간의 월성군(月城君), 동쪽에 안숙공(安肅公) 등 삼부자의 제단(祭壇)을 새로 설치하였으나 1993년에 안숙공(安肅公)만 남원(南原)의 송현(松峴)으로 이단(移壇)하였다.

 이 제단(祭壇)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모셔 있으며 매년 (양) 5월5일 세일제(歲一祭)를 모신다.

                                                      <1985년 제단 설립 당시>

※ 1985년 제단 설립시에는 개성에 계신 문헌공 , 월성군, 안숙공, 안숙공의 配 정부인 벽계이씨 양세 4위를 모셨으나, 1995년 안숙공 내외의 제단을 남원시 광치동으로 모셔가므로 현재는 문헌공과 월성군의 양세 2위의 제단만 남아 있다.


                                                            <현재의 모습>